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이신기오로 도르곤 (문단 편집) === [[형사취수]]설 === 청 태종의 비이자, 순치제의 어머니인 [[효장문황후 보르지기트씨]]와 결혼했다는 야사가 있다. 당시 유목 민족의 풍습이던 형사 취수를 했다는 것인데, 은근히 증거가 많이 있어 대중에서는 거의 정설로 여긴다. [[순치제]]의 등극부터, 도르곤 사후의 복수까지 맞아 떨어지는 점이 많다. 도르곤을 황'''부'''섭정왕으로 책봉한 것, 태후가 혼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장황언의 시, 태후였던 효장문황후가 어린 순치제와 매우 떨어진 궁에서 살았고 얼굴 보기 무척 힘들었다는 점, 각종 문헌에서 '도르곤이 황궁 내원을 드나들었다'는 구절이 발견된다는 점, 청조 역사에서 존경받는 효장문황후가 심양 북릉(베이링(北陵))의 홍타이지와 합장되지 않고, 청동릉에서도 풍수담 바깥에 안장된 점 등이 바로 그 증거들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 증거들은 다소 부족한데… 먼저 황부(皇父)의 경우 그 의미가 무거운 것은 맞으나, 실제 부자 관계가 아니라도 존경의 의미를 담아 부(父)로 호칭한 사례가([[범증|아부]], [[견훤|상부]] 등) 종종 있었기 때문에 증거로는 불충분하다. 또 장황언의 시에 태후의 혼인을 준비한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나, 장황언이 반청복명 인사[* [[정성공]]의 막료로 있었다.]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시를 순수하게 믿기는 어렵다. 사실, 당시 도르곤은 호오거의 부인 보르지기트씨를 계복진으로 취한 바 있었는데 이 일이 같은 호르친 출신인 효장문황후의 일로 와전되었고, 청조를 미워했던 장황언이 이를 일부러 시에 넣었을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한편 여러 문헌에서 '도르곤이 황궁 내원을 드나들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맞지만, 어디까지나 '드나든' 것이지 '기거한' 것은 아니고(...), 만일 정말 도르곤이 효장과 혼인했다면 내원에 드나든 것은 죄가 되지 않을 것이나, 도르곤이 내원에 드나든 것은 후일 도르곤의 죄 중 하나로 지목된다. 효장문황후의 무덤의 위치 역시 도르곤과의 혼인 탓이 아니라 자신 때문에 굳이 "남편 홍타이지의 무덤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다"는 효장문황후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게다가 도르곤과 효장문황후가 정말로 혼인했다면, 순치제가 [[굴묘편시|도르곤의 시신을 파내어 매질까지(!) 하는]] 상황을 효장문황후가 방관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재 역사 학계에선 효장문황후와 도르곤이 혼인했을 가능성을 부정한다. 정략적인 정치적 파트너나 진도가 많이 나갔다 쳐도 연인일 수는 있어도 혼인까지 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 다만 사극들은 이 두 사람이 서로 사랑했다는 설을 많이들 택하고 있고, 중국의 여러 사극에서 그려진 두 사람의 [[로맨스]]는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보통 사랑하던 두 사람이 홍타이지에 의해 갈라지게 되었다가(원래 홍타이지가 그녀의 정혼자였다.) 나중에 도르곤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서 다시 사랑이 불타오르게 된다는 식이다. 다만 어떤 역사 소설에서는 홍타이지 사후 효장문황후의 아들 푸린이 황제 자리에 원만하게 오르기 위해 도르곤을 이용했다는 식으로 쓰이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